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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배 칼럼
“유리창에 ‘빨간 삼각형’ 하나 붙이는데 걸린 49년”
한국건축신문 기사입력  2019/01/02 [06:50]

 

▲ 김중배 : 조명평론가.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大記者     © 한국건축신문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탈리아 로마를 처음 가는 사람들이 건물 창문마다 붙어 있는 덧문을 보고 “저게 뭐지?” 하고 궁금해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1990년대 초에 제가 처음 로마에 갔을 때 저와 함께 로마를 방문한 일행 분들 사이에서 “저 덧문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놓고 서로 티격태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은 “이탈리아에는 도둑이 많다고 하니 도둑이 건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범창일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분은 “아무리 도둑이 많아도 그렇지, 이렇게 해가 훤하게 비치는 대낮에 굳이 덧문을 닫아놓은 것을 보면 최소한 방범창은 아닐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 밖에도 저마다 내놓는 해답이 많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내놓은 의견 중에는 정답이 없었습니다. 정답은 “대낮에 햇빛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덧문”이었지요.


이런 로마의 덧문 못지 않게 방문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본 도쿄의 빌딩 창문에 붙어 있는 빨간색 역(逆)삼각형입니다. 이 빨간색 역삼각형은 아무리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아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쉽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저 역시 1993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빌딩의 유리창마다 붙어 있는 빨강색 역삼각형을 보고 “실내에 있는 사람들이 유리창에 부딪히지 말라고 붙여놓은 표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빌딩 한 층에 나 있는 여러 개의 유리창 가운데 유독 한 개 또는 두 개의 유리창에만 이 역삼각형 표시가 붙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일행 분이 “그렇다면 다른 유리창에도 빨강색 삼각형 표시를 모두 붙여야지 왜 한 층에 있는 한 개나 두 개의 유리창에만 붙이겠느냐?”고 이견을 제기하시는 바람에 기껏 생각해낸 “충돌방지용 표시”라는 이론을 슬그머니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빨강색 역삼각형의 정체
이처럼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빌딩 유리창에 붙어 있는 빨강색의 역(逆)삼각형 표시는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 하면 일본 이외의 어느 나라를 가도 이런 식으로 유리창에 빨강색 역삼각형 표시를 해놓은 곳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빨강색 역삼각형을 보면 볼수록 궁금증만 더 커질 뿐입니다.


게다가 짓궂은 현지의 여행 가이드는 “도둑에게 이 유리창으로는 침입하지 마시오라는 표시”라는 식으로 알쏭달쏭한 농담까지 해대니 이 빨강색 삼각형의 진짜 정체를 알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이 역(逆)삼각형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일본을 몇 번 방문한 뒤의 일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역삼각형 표시는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실내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유리창’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이 표시가 붙어 있는 유리창은 화재를 진압하러 온 소방관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유리창을 알려주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 역삼각형은 실내 쪽은 흰색으로 표시를 하고, 바깥쪽은 빨강색으로 표시를 하게 돼 있습니다.


불을 끄러 온 소방관들이 실내로 진입할 유리창을 빨리 알아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빨강색을 유리창 바깥 쪽에 사용하도록 정해 놓은 것이지요.


이 빨강색 역삼각형 표시가 돼 있는 유리창의 정식 명칭은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으로, 일본에서는 이미 1970년부터 이런 유리창을 설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보다 49년이나 도입이 늦은 빨강색 역삼각형 표시 유리창
그런데 이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는 빨강색 삼각형 표시가 붙어 있는 유리창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건축물의 피난, 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이 규칙이 내년 5~6월경에 시행되면 새로 건축하거나 증축 또는 개축하는 건물에는 소방차가 진입해 사다리차가 닿을 수 있는 건물 측면의 2~11층 사이에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해야 합니다. 진입창의 크기는 폭 90cm 이상, 높이 1.2cm 이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이렇게 빨강색 역삼각형 표시가 붙은 유리창의 설치를 규칙으로 제정하기로 한 이유는 최근 1~2년 사이에 발생한 대형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지난해 12월에는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나 무려 2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때 소방차가 빨리 도착을 했지만 소방관이 실내로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해서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이제부터는 예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입니다.


◆늦어도 너무 늦은 정부의 대응
물론 화재가 났을 때 소방관들이 건물 안으로 쉽고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유리창을 설치하도록 정부가 규칙을 정한 것은 백 번을 생각해도 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번 조치를 무조건 “잘 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동안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 규정을 만든다, 유리창 규격을 제정한다, 하면서 유난을 떠느냐?”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일본에서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부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내년 5~6월부터 이런 유리창을 설치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은 이미 1970년부터 설치한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49년이나 지난 뒤에 설치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난 49년 동안은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에 대한 정부의 ‘무신경’이 문제
저는 그 이유를 ‘정부의 무신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 49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화재로 인해 적지 않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재가 발생해서 국민들이 목숨을 잃어도 정부는 그 때만 소방안전 점검을 한다, 책임자를 처벌한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을 뿐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 하나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서 정부와 해당 부서를 비난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는 얘기지요.


이런 일이 반복된 이유는 화재가 발생해서 국민이 사망했을 때 근본적인 대책이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제도로 정착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100명이나 1000명, 아니면 1만명이나 10만명이 되는 소방 관련 공무원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이를 제도로 정착시켜야 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라면 지난 49년 동안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에 관한 규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도입이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49년 동안 이런 유리창 하나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정부나 해당 부서 관계자들이 화재로 인해 국민이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무신경했다”거나 “관심이 없었다”거나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저 불쌍한 것은 화재로 목숨을 잃는 우리 국민들뿐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비단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의 생활 곳곳에는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률이나 시행령, 조례나 규칙 하나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는 분야가 한 둘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 모두 누군가가 나서서 없는 법을 만들고 시행령과 조례, 규칙을 만들어서 국민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을 방지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1970년부터 일본은 규정을 만들어서 실시해 온 ‘소방관 진입용 유리창’ 하나를 보면 일본과 한국이 무엇이 다른 지, 그리고 국민을 대하는 정부나 공무원의 자세가 어떻게 다른 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중배 : 조명평론가.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大記者

기사입력: 2019/01/02 [06:50]  최종편집: ⓒ architecture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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